작곡가 이재신

이재신

 

 Jaesin Lee composer

 

 

 

 

 

 

 

 

 

 

 

 

 

 

 

 

 

 Bio  

 

곡가 이재신은 독일 바이마르 '프란츠 리스트' 국립음대에서 작곡은 옵스트 교수(Prof. Obst), 전자음악은 미나드 교수(Prof. Minard)를 사사했다. 독일 유학 중  프랑스 파리 앙상블 아르세마(L`ENSEMBLE ARCEMA), 중부독일방송교향악 (MDR ORCHESTRA)등 유명단체로부터 위촉을 받은  그의 작품은  유럽 각지에서 연주 되어 호평을 받았고, 특히 MDR방송교향악단이 연주한 그의 작품 Concerto for 2 Groups (지휘  Mattias Foremny)는 독일 전역에 라디오 방송되었다.

 

2005년 한국으로 귀국한 이후로는 현대음악 뿐만이 아니라 무용, 영화, 음악극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의욕적인 작품 활동을 보여주었다. 그의 첫 장편영화 "마지막 밥상"을 비롯해 그가 영화음악감독으로 참여한 여러 작품들은 베를린, 칸, 선덴스, 로테르담, 부산 등 세계 유명 영화제로부터 초청을 받았고, 그의 영화음악은 미국 영화평론지 버라이어티로부터 언급되어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이 후 그는 그간의 경험을 엮은 '이재신의 영화음악론(2014)'발간하고, 극음악에 매진하는 모습을 보였다. 최근 몇년간은 심도있는 극음악 연구로 음악극과 오페라를 연이어 발표했다. 특히 그의 그랜드 오페라 '1953'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 올 해의 신작 오페라로 당선되었다. (2018, 초연)

현재 그는 21세기악회, 한국국민악회, 서울작곡가포럼에서 정회원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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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rn in Gwang-ju, South Korea, composer Jaesin Lee went over to Germany after he graduated from high school to achieve master’s in composition at The Liszt School of Music Weimar, Germany.

When he was still a student, his works were requested from L`ensemble Arcema (France) and MDR Symphony Orchestra (Germany) to be performed in Europe. Especially The Concerto for 2Groups played by MDR Symphony Orchestra was broadcast on German radio and created a sensation along with excellent critiques. Since he came back to South Korea in 2005, Jaesin Lee has been establishing his musical career throughout a number of collaborations involving visual and performing arts.

The feature-length film The Last Dining Table (2006), with which he debuted as musical director, was given a first-rate critique from the Variety (magazine) as well as several invitations from world-renowned film festivals including Sundance and the Rotterdam. After that, he published 'Jaesin Lee's Theory of Film Music (2014)' based on his experiences and focused on dramatic music. In recent years, as a result of studies, he has presented Musikdrama and opera in succession. In particular, His grand opera '1953' was elected as the 'New Opera of the Year' by the Korea Arts Council. (2018, premiere)

Currently he is teaching as college tutor as well as a registered member of The Korean Society of the 21st Century Music and Seoul Composers Fo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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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 story                                

 

릴적 나의 고향 광주에 지금은 터미널로 변한 그곳에 독일서커스가 왔다.

 

온 가족이 서커스를 보러갔었는데, 그때 서커스가 시작되기에 앞서 분위기를 둗우기 위해 어떤 오케스트라 음악이 연주되었다. 

나는 음악을 듣자마자 심장이 울렁거리는 전율을 느꼈다. 내가 기억하는 첫 클래식 음악이었다.

그때의 벅참과 흥분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당시에 음악이라고는 동요밖에 모르던 어린학생이 처음으로 경험하는, 정말 호사스러운 음악이었다. 

그러나 나는 음악을 즐기려는 마음보다 조건반사적으로 이 음악이 무엇인지 알아야 했기 때문에 멜로디를 필사적으로 외웠다.

 

그리고 서커스가 끝날때 까지도 그 멜로디를 잊어버릴까봐 노심초사 했던 기억이 난다.

며칠이 지나서도 그 감동은 지워지질 않았다. 나는 시간이 날때 마다 그 멜로디를 다시 되뇌었다.

 

처음으로 느끼는 강렬한 경험이었다.

 

성이면 감천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길을 걷다가 우연히 그 멜로디의 음악을 들었다. 

그 음악은 어느 레코드 가게에서 흘러 나왔고, 나는 그 음악이 끝나기 전에 이것이 무엇인지 물어봐야 했기 때문에 급히 그 가게로 들어갔다.

 

그 음악은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이었다. 환상적으로 풍부한 화음과 음색, 대담한 기악적 멜로디들과 리듬들.

음악은 지적 유희이기 이전에 그냥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나는 이후에도 이런 과정을 몇번 더 거쳤다.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가 그랬고,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가 그랬다.

집에는 성음 테이프가 가득 쌓였다. 

 

는 단지 음악이 나를 이렇게 전율하게 만드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때부터 생긴 나의 버릇은 감동받은 음악이 왜 감동을 주는 지 집에서 피아노로 실험해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점점 쌓여갔고, 언젠가 부터 다시 나의 습작 속에 인용되었다.

철없던 학생을 밤새우게 하는 것, 그리고 자부심을 갖게 하는 것, 그것은 음악이었다.

 

여동생과 함께 다니던 피아노 학원에서는 어느날 작곡 선생님을 만나보라고 했다.

내가 취미로 하는것 처럼은 안보였지만 그렇다고 피아노 전공할 실력은 안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아니면 쓸데없이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만 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이렇게 작곡을 시작했다.

 

 

 

2013. 1.18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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